후기- 실패한 여행이란 게 있을까?

  계절이 두 번 바뀌고 나자, 사상 최고의 더위였다는  여름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내 몸조차 그 감각을 서서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나의 소중한 첫 유럽여행의 기억도 더위의 감각과 더불어 잊혀질까 두려웠다. 그래서 슬그머니 기록을 해보자 마음 먹었다. 늦 여름쯤 기록을 시작했으나 방송대 수업과 시험에 신경을 써야했고, 여가 있을 때도 게으름 피우다 보니 어느덧 겨울이 되어있더라.


  평생 처음 가본 유럽 여행 -  프라하, 에딘버러, 런던-의 기억이, 글을 쓰며 따뜻하게 되살아 났다. 좋은 기억을 다시 곱씹어 보는 즐거움이 있어, 기록을 뒤적이고 지명을 확인해 보는 귀찮음 정도는 쉽게 떨칠 수 있었다. 
  글을 너무 자세히 쓰는 건 혹시라도 여행 정보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의 흥을 깰 수 있다고 생각해 세세한 에피소드들은 왠만하면 생략했다. 사실 구구절절 다 적을 수 있을 정도로 내가 부지런하진 않다는 게 먼저다.

  늦은 공부를 하면서 종종 느낀 것인데, 나이가 들면 지금껏 쌓아온 경험이 도움이 되는건지, 대상에 대한 이해력이 깊어졌다고 느끼곤 한다. 그래서 같은 내용을 좀 더 다채롭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번 듣고 본 것을 깨끗하게 잊어버리게 되는 신통한 능력? 또한 옵션으로 따라온다. 쉽게 감흥을 느끼지만 쉽게 잊어버린다는 아이러니...
  대안으로 기록에만 의존하기에는 내가 너무 못나 보인다. 어차피 세월가면 남을 것은 남고 잊혀질 것은 잊혀지겠지...라는 마음으로 여행기록을 약간 헐렁하고 가볍게 적고 싶었다. 그러나 쓰고보니 결국 그렇게 하지도 못한 것 같다.

  의도한 대로 표현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하기로 한 일이라,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몇 가지만 추가로 기록해 본다.

< 비셰흐라드에서 내려다 본 마을>


<영국여행에서 빠진 경로>

  시간과 금전 등 현실적인 이유에서 여행 기획 리스트에서 제외되거나, 혹은 여행 도중에 못가보게 되는 장소가 흔히 생긴다. 여행 경험치가 높으면 여행지 선정과정에서  좀 더 합리적인 동선을 기획했을텐데 나로선 그렇지 못해 아쉬웠다.


Lake district 또는 Coast to coast walk  중 일부
 
 내가 영국을 앞으로도 가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더불어 여유있는 시간이 함께 허락된다면.. 영국의 호반지역에서 출발, 동서를 가로지르는 횡단여행을 하고 싶다. 완주를 꿈꾸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영국의 자연풍경을 실컷 마음에 담아보고 싶다.

RYE
 
 중세시대 분위기가 고스란히 간직되었다는 이 마을을 가 보고 싶었다.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서너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이다.
  우리에게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가능할 것도 같았는데.. 원래 계획은 기차 타러 가는 김에 해리포터의 기차탑승구간도 가보고, 차창밖으로 시골 풍경도 보고, rye에서 유명하다는 영국5대 피쉬&칩스 맛 보는 것이었는데... 아쉽지만 다음기회에 흑.

 Oxford

 옥스포드도 가 보고 싶은 곳이었다. 아름다운 탑과 건물들이 많기도 하고, 아들 녀석과 옥스포드 대학에 대해 이야기(우리끼리의 농담같은 것) 한 적이 더러 있어서 옥스퍼드대 캠퍼스 구경도 하고, 해리포터가 다녔던 호그와트의 식당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부족하여... 이것도 다음기회에...

기타

 스톤헨지 (영문과 교수님이 실제 보면 놀랍다고 하셨던)
 헴스테드 히스 (가장 런던 다운 동네라는)
 브릭레인 빈티지 마켓 (나는 여전히 빈티지를 좋아하므로)
 런던 시내 구석구석 또는 골목 투어 등등...


  많이 놓쳤다. 그러나 여행은 미완성일 때 가장 매력적인 것... 다음을 기약하게 하는 설레임이 남아 있어야 또 다음번 여행을 꿈꿀 수 있으리라... 고 변명해 본다.


< 정적인 사진을 찍을라치면 점프를 하여 방해하던 아들..배구 블로킹 중>


<영국사람들 성격>

  내가 가본 외국은 미국, 홍콩, 대만, 베트남이 전부다. 영국 사람들이 소심하고 얌전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작년에 가 봤던 대만만 하랴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 본 영국인의 첫인상은 상당히 강렬했다. 무척 조용하고 조신해 보였다. 표현에 거리낌 없는 미국 사람들이랑 완전 다른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이래서 국민성이 어떻다는 이야기들을 하는구나? )

  런던 지하철을 자주 이용했는데 의외로 관광객이 별로 없었다. 이방인을 보면 자연스레 눈길이 갈텐데 생각보다 우리를 쳐다보는 사람이 없어서, 역시 국제화된 도시라서 다르네! 하고 평했다.
  그런데 아들 녀석이 조용한 목소리로, '엄마, 사람들이 우리를 살짝살짝 보다가 나랑 눈이 마주치니까 안 본 척, 책 보는 척하네' 라고 일러주었다. 오...보긴 보는구나. 그나마 대놓고 보지는 않는 걸 보니 매너는 있네 싶었다.

 한 번은 내가 더운 객실 내의 환풍창 입구에 서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그 작은 창이 에어컨 없는 지하철의 그나마 유일한 바람구멍인줄 몰랐다. 쌩 달릴 때 마다 후덥지근한 바람이 들이 닥쳤다. 너무 거슬려 탁, 소리내며 문을 닫았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일순간 분위기가 썰렁해진 것이었다.

  뭔가, 아무도 나를 쳐다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안보는 척 내 행동을 다 느끼고 주목하는 그런 느낌! 그게 무슨 말인고 하니, 외국인이 뭘 잘 몰라서 문을 닫은거 같은데 이걸 뭐라할 수도 없고, 끙~~~갈등하다가 그냥 참고있는 그런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 채로 두서너 정거장을 지나쳤더니 객실은 더워질 대로 더워졌고,
  새로 탑승한 어떤 부인이 계속 환풍창을 흘깃흘깃 노골적으로 쳐다보길래, 내가 '열어드릴까요?' 했다. 그 부인의 답, '그래주시면 고맙겠네요'

  그 후로 객실 내의 분위기가 한결 편하고 가벼워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에고 나 때문에 그런 분위기였네... 좀 누가 알려주지 ㅎㅎ ' 아무튼 영국사람들 진짜 조심스럽네라고 직접 느끼게된 사건이었다.

  나는 이 조심성 많고 보수적이고 낯가리는 영국인들의 속성이 어쩐지 나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비슷한 사람만 많으면 편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갑갑한 상황이 많이 생기겠구나 쉽게 예상 해 볼 수 있게 되었다.

<런던의 작은 비행장에 가던 중 기차에서 본 영국 시골>
    

<실패한 여행이란 게 있을까?>

  여행의 목적이 어떤 미션을 달성하는 거라고 하면 여행의 끝은 성공과 실패로 가름될 것이다. 그런데 여행이 그래서야 되겠는가...미션 수행이 목표가 된다는 것은 여행에 관한 한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내가 머릿 속에 그리는 여행은 그렇다: 의외성이 빠진 여행은 속 없는 찐빵이라고. 의외의 감동/ 의외의 사건/ 의외의 돌발 상황 없는, 예상했던 계획과 감동 만큼의 여행을 완수하는 것은 뭔가 심심한 맛일 것 같다.

  또한 (어디까지나 내가 그리는) 여행에 대한 이상적인 태도는 이런 것이다: 때로는 여행이 기대에 못 미칠 수 있음을 각오해야 하므로 무딘 마음을 지닐 것, 때로는 의외의 곳에서 소소한 기쁨이나 아름다움을 발견할 기회가 생길 수 있으므로 감각이 깨어있게 할 것

  모순되지만 이 두가지를 모두 지키려면 여유있는 맘을 지니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 두가지를 잘 지켰냐고 되물어 본다면, 하...아니다..


  애초에 여행을 기획할 때 절대 무리하지 말고, 서두르지 말자. 마음에 들지 않은 곳을 마주쳐도  선택을 후회 하지 말고, 맘에 드는 곳이 있으면 더 오래 머무르자고 해 놓고서는... 결국엔 원래의 뜻보다 더 서둘렀고 허둥대고 욕심을 부렸던 여행이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이 구경하기'가 아니라 더 천천히, 더 마음을 내려놓고 보기였는데 마음의 둘레가 그리 크지 않은 나는 이번에도 또 서둘렀구나 싶다.


  그럼에도, 실패한 여행은 없다고 난 믿는다. 다음 번 여행을 위해 필요한 건 체력 비축 그리고 나이에 맞게 성숙해 지기.. 산다는 건, 끝 없이, 멋진 여행을 꿈 꾸는 것과 다름 아니지... 

  언젠가는 더 멋진 여행을 할 수 있기를!!

런던 적응기 4 (이제 겨우 적응했는데...끝!)

<런던 6일차>타워 브릿지 →  타워 올라가서 구경(★★★☆) →  타워 브릿지 엔진 룸→ 버로우 마켓(★★) →  다우닝가 근처에서 식사 → 호스가드 광장에서 마지막 교대식 구경(... » 내용보기

런던 적응기 3

메모를 찾아보니 7월 25, 26일이다. 본격적으로 더워졌던 날이다. 런던 4일차<그리니치의 날>DRL line을 타고 그리니치로 이동(DRL은 경전철인데, 지하철과 요금체계를 공유한다. 지하철에 비해 쾌적하다.) → 커티삭(=해양박물관 ★★★★★) → 구 왕... » 내용보기

런던 적응기 2

둘째 날과 세째 날 돌아다녔던 곳을 일괄정리해본다.런던 둘째 날 (7월 23일)Tooting Broadway(Northen line: 검은색 노선)에서 출발 → South Kensington(District line:초록 노선)에서 하차, 자연사박물관 → 켄싱턴 동네 구경 → 버스로 이동, Harrods &nbs... » 내용보기

런던 적응기 (+ 에어비앤비 경험기) 1

드디어 런던이다.이번 여행은 사실 런던을 오기 위해 체코도 들렀고 에딘버러도 갔다할 만큼, 런던이 중심에 있었다.런던을 특별히 좋아해서가 아니라 영국의 수도이기 때문에 영국다운, 다양한 경험들을 집약적으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이 대단한 나라였다는 별 새로울 것도 없는 사실을 토대로, 방송대를 다니면서 들은 영국 ... »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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